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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제 게리 같은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거는 이 사람은 그 힘이 있는 과정들을 하나하나 설득을 해가면서 한 30년을 계속 버텨 가지고 결국에는 이걸 완성을 한 거예요. 가장 아티스틱한 형태를 만드는 사람이지만은 동시에 가장 기술적으로 앞서나갔던 그래서 이때부터가 이 사람은 진짜 예사로운 사람은 아니구나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안녕하세요 왓슨 여러분 이번 시간에는 프랭크 게이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랭크 게리는 96세에 타결을 하셨습니다. 자기 꿈을 다 펼치고 그러면서 가셨는데 건축계에서는 엄청난 영향을 끼치셨던 분이죠. 그런데 저는 프랭크 게리의 인생을 보면 참 인생지마 세공지마다. 이거를 제가 많이 느낍니다. 이분이 젊어서부터 그렇게 인생이 잘 풀렸던 분은 아닙니다. 프랭크 게리는 유태인이죠. 미국에서 7, 80년대에 크게 성공했던 건축가들이 유태인들이 되게 많거든요. 대표적인 사람이 프랭크 게리, 리차드 마이어, 피터 아이젠만 이렇게 3명 정도를 뽑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셋 중에서 가장 먼저 성공한 사람은 누구냐? 리차드 마이어가 제일 먼저 성공을 했고요. 프랭크 게리는 초창기에는 그렇게 대단한 건물을 지지 못했거든요. 이분이 워낙에 했던 디자인이 파격적이에요. 본인이 생각하는 건축이 형태를 다 파괴하고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가는 분이었기 때문에 그런 거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건축주를 만나기는 어려웠겠죠. 그래서 저는 이거는 사무실에서 일했던 사람한테 전해 전해 들은 얘기인데 프랭크 게리가 초창기에는 되게 일거리가 없어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그래요. 그래서 정신과 상담도 많이 받았고 이러면서 거기에 왔던 다른 아티스트들하고 친해졌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아티스트 중에서도 위차드 세라가 가장 가까웠던 그런 예술가로 알려져 있는데 위차드 세라는 철판이 곡선으로 휘어있는 그런 거를 디자인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그런 디자인을 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분 아버지가 조선소에서 일하셨던 분이고 어렸을 때 아버지 따라서 직장에 가봤더니 거대하게 큰 기계가 롤러에서 배를 만들 때 철판을 막 쉬는 그런 모습을 보고서 거기서 크게 영감을 받아서 나중에 나이가 먹어서도 그런 작품을 했다고 합니다. 공면으로 되어 있는? 그거를 좀 어려운 말로 패럴럭스라고 합니다. 내 현재 포지션에 따라서 관찰하는 대상이 달라 보이는 거 이런 거를 패럴럭스라고 하는데 이렇게 휘어있으면 제가 걷다 보면 철판이 저한테 가까워졌다가 좀 멀어졌다가 내가 움직이는 거에 따라서 공간감이 바뀌고 이런 거를 패럴럭스라고 보통 얘기해요. 천문학에서도 패럴럭스라는 말을 쓰는데 연주시차라고 해서 관측자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 보이는 걸 얘기를 해요. 그게 극단적으로 보여지는 게 리차드 세라의 작품이죠. 그게 이제 프랭크 게리의 어떤 건축하고 어떤 연관성이 좀 보이죠. 프랭크 게리가 그러한 형태를 만들려고 했던 데에는 어렸을 적에 유년기의 기억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분이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가 앓는 생선 요리를 하셨는데 생선 요리를 할 때 며칠 전에 살아있는 생선을 사다가 세수대와 같은 데다가 담아놓고 있었다고 해요. 그러니까 어린 애기가 그걸 보고서 그게 막 움직이면 비늘이 햇빛에 반짝반짝거리면서 바뀌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형태들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걸 보고서 되게 거기에 심취했다고 해요. 뻔히 뚜레질 쳐다보고 그랬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분이 나중에 커리어를 할 때 항상 형태를 만들 때 물고기 형태를 만들고 싶어해요. 초창기에 이분이 그 형태를 만들 때 첫 번째로 했던 작품이 뭐였냐면 스탠드입니다. 스탠드를 등을 만들 때 그거를 뱀 모양으로 만들기도 하고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기도 하고 여러 가지 공면의 형태를 가진 걸로 만들어요. 근데 흥미로운 게 저는 직접 국외나인 전시장에서 본 적이 있는데 진짜 경이롭게 아름답습니다. 그게 오버랩 돼가지고 붙여지고 붙여지고 붙여지고 하면서 그 비닐처럼 만들어가지고 물고기 형태를 만드는데 그 사이사이로 빛이 막 새어나오거든요. 그 공면의 형태, 물고기 형태를 만듭니다. 그러고 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87년도쯤에 고베에 물고기 모양으로 되어 있는 어떤 조형물을 만들어요. 진짜 물고기 모양처럼 되어 있는데 타공철판으로 해서 아주 현실감 있게 물고기를 바깥쪽에 헐떡 뛰는 것 같은 모양을 만듭니다. 이 사람이 그 단계에 고베에서 물고기 모양을 만들 때 큰 변화가 생기는데 이게 뭐냐 하면 사실은 이런 식으로 하면 건물은 따로 있고 바깥쪽에 있는 물고기 모양은 조각품일 뿐인 거잖아요. 그거는 사실은 건물과 조각이 따로 노는 거죠. 그 다음 단계로 물고기 같은 건물을 만들고 싶은데 하면서 계속 생각을 했을 거 아닙니까? 그러고 나서 89년도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게 바르셀로나에 만들어진 물고기 모양의 어떤 형태를 만들어요. 그런데 거기서 큰 변화는 뭐냐? 추상화가 시작이 됩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봤을 때 두 개의 스탠드와 고베의 물고기는 딱 봐도 물고기예요. 그런데 바르셀로나에 가서는 물고기가 아니고 약간 곡선의 형태만 있는데 물고기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그걸 만들기 위해서 이 사람은 금속 스트립을 써서 띠 같은 리본으로 되어 있는 금속을 써서 엮어가지고 만들거든요. 그래서 그 형태를 만들어요.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냥 조각품 같은 것만 만들었다뿐이고 건물로 현실화시키지는 못한 겁니다. 그러고 나서 그 다음 단계로 가는 게 빌바오 구겐하임이라고 하는 걸작이 나오는 거죠. 그래서 물고기 모양인데 실내 공간도 있고 똑같이 금속으로 쓰는 그런 일들이 현실화되는 과정까지 갑니다. 이 사람이 어렸을 적에 물고기를 좋아했던 것부터 시작해서 커리어 초창기에 스탠드부터 시작해서 과정을 계속 수십 년에 걸쳐서 맨 마지막 단계에서 빌바오 구겐하임이라고 하는 미술관을 디자인할 때에는 자기가 쓸 수 있는 모든 기술을 다 총동원을 해서 도움을 받는 거예요. 그 당시에 카티아라고 하는 어떤 소프트웨어를 써가지고 그 형태의 틀을 만들고 디트로이트에 있는 자동차 회사에서 공면의 금속을 만드는 그런 것들을 배워왔다고 해요. 그래서 자동차나 전투기나 배 이런 걸 만들 때 만드는 방식, 공면을 만드는 방식은 밑에다가 프레임을 먼저 디자인을 하죠. 그 다음에 프레임이 완성이 되고 나면 그 다음에 철판을 그 위에다 붙이잖아요. 자동차 본넷트라든지 문짝 같은 것들을 그 바깥쪽에 붙이죠. 그 방식을 그대로 따갖고 와서 건축에다 적용을 한 겁니다. 그래서 내가 이런 물고기 모양의 어떤 건축을 하는데 그걸 만들기 위해서 그 밑에 H형광으로 만들어진 스트럭처는 어떻게 될지를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디자인을 하고 그걸 공장에서 제작을 한 다음에 갖고 와서 조립을 하고 그 바깥쪽에다가는 철판을 붙여가지고 건물을 완성하는 겁니다. 사실상 이거를 제일 잘할 수 있는 데는 누구냐? 그건 사실은 조선업인 거예요. 조선업이 이걸 제일 잘할 수 있죠. 왜냐하면 조선업은 완벽한 방수를 필요로 하는 일이잖아요. 배도 유선형의 모양을 따야 되는 거고 그 유선형으로 만들어진 금속의 표면 형태의 물이 절대로 침투하면 안 되는 거니까 사실은 건축도 똑같죠. 건축은 비가 내릴 때 방수를 해야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배를 만들 때 쓰는 모든 기술들을 그대로 180도 뒤집어서 엎으면 그게 지붕이 되면서 건축물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같이 조선업이 발달한 곳에서는 사실 프랭크게리 같은 그런 디자인이 어떻게 보면 캐나다 출신의 프랭크게리보다 먼저 나올 수 있었겠죠. 그런데 실제로는 그게 안 된 이유는 프랭크게리 같은 건축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우리가 보면 70년대, 80년대에 되게 파격적인 형태를 하던 건축가가 둘이 있습니다. 한 명은 피터 아이젠만이 하나 있고요. 한 명은 프랭크게리입니다. 둘 다 보면 형태가 아직 기괴하고 그 당시에 많은 건축가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그런 형태의 건물을 디자인을 했어요. 그런데 두 사람은 사실 들여다보면 사고 방식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피터 아이젠만이 의식의 단계로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한다면 프랭크게리는 자기의 무의식의 상태의 것들을 끄집어내가지고 사람들에게 선보이려고 하는 사람인 거죠. 프랭크 게리 같은 디자이너가 왜 없냐 하면 전 세계적으로 건축 학교에서는 프랭크 게리처럼 디자인하면 엄청나게 질타를 받습니다. 우리가 교수님들을 만나서 너 왜 이렇게 설계했어? 그냥 좋아서요. 이렇게 얘기하는 순간 엄청 까입니다. 왜냐하면 합리적인 설명을 원해요. 모든 건축에서는. 그 이유는 딴 게 아니고 건축은 인간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승인을 받아야지만이 그걸 한 단계 한 단계에 올려질 수가 있어요. 건축주가 디자인을 오케이 해야 되고 공무원들이 오케이 해야 되고 심의위원도 설득해야 되고 시공회사도 설득해야 되고 왜 이렇게 돈을 들여서 이걸 만들어야 되는지를 합리적으로 설득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왜 가분수로 만들었니? 그러면 가분수로 건물을 만들면 꼭대기층이 제일 경치가 좋은 데니까 펜트하우스가 비싸게 팔 수 있어서 거기 옆면적이 제일 높게 만들어서 건물을 가분수로 만들었어요. 이렇게라도 설명을 해야 되는 거예요. 이게 건축가들의 사고방식이거든요. 그런데 프랭크게리 같은 식으로 그냥 좋아서 했어야 하면 엄청나게 까이는 거죠. 그런데 이제 게리 같은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사람은 그 힘든 과정들을 하나하나 설득을 해가면서 어떤 설득이 안 됐겠죠. 그런데 자기하고 결이 맞는 건축주를 만났겠죠. 한 30년을 계속 버텨가지고 결국에는 이걸 완성을 한 거예요. 이런 디자이너들이 좋은 점은 뭐냐면요. 이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무의식적으로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에요. 그러니까 아티스트 같은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 안토니 가우디 같은 사람이겠죠. 가우디 같은 사람도 아주 독특한 형태를 만들잖아요. 독특하고 장식적인 건축을 하는 사람이죠 그런데 프랭크게리든 안토니오 가우디든 둘 다 대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이오환 씨 같은 경우도 그렇죠 이오환 작가 저만화 찍잖아요 그냥 저만화 찍고 몇 억씩 10억씩 하는 그림을 그리시는데 사실 누구나 저만화는 찍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분은 수십 년 동안 평생에 걸쳐서 자기의 인생으로 그거를 증명해 보인 사람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저만화 찍으면 아무도 안 사지만 이오환 씨가 찍으면 사는 거예요 그런데 프랭크게리도 마찬가지죠 이분이 그 디자인을 하는 게 지금도 누군가는 흉렬을 낼 수 있겠지만 이분은 물고기 스탠드부터 시작해서 바르셀로나의 파밀리언부터 해가지고 그 수십 년에 걸쳐가지고 온 전 인생 자체가 물고기에 헌신한 사람이잖아요. 물고기의 형태를 만드는 건축을 하자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이분이 대체 불가능한 건축가로서 꽃을 피웠다. 이렇게 볼 수 있죠. 전에 제가 한번 렉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분이 나도 좀 다른 거 좀 하고 싶다. 나도 다른 형태도 하고 싶은데 건축주들이 원하지 않는데요. 이미 이런 걸 기대하고 오는 사람이어서 새로운 시도를 못하게 되는 진짜 행복한 고민인 거죠, 여러분. 저도 그런 고민을 해왔으면 좋겠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프랭크 게리의 작품은 디즈니 콘서트홀입니다. 이게 디즈니 콘서트홀이 너무 대단한 게 뭐냐면요. 제가 처음으로 이 프랭크 게리의 디즈니 콘서트홀 계획안을 본 거는 1988년도에 한국 건축 잡지에 요만하게 하나 실렸어요. 디즈니 콘서트홀의 당선자는 프랭크 게리다 하면서 사진이 올라왔는데 한 4층 정도 되는 시루떡같이 이렇게 쌓여져 있는데 메스가 조금씩 달라요. 각 층마다 이렇게 되고 나머지 에이트리움 같은 유리로 된 거 하나 있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뭐 원래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 당시에 이분이 곡면을 만들고 싶은데 당시에 기술로서는 만들 수 있는 게 평면상의 2차원 정도의 곡면밖에 없는 거죠. 근데 그걸 똑같이 올리기 싫으니까 층마다 다른 곡선의 평면을 만들어서 차곡차곡 쌓아서 만든 거였어요. 당시로서는 그것만으로도 되게 파격적인 형태였는데 88년도에 당선이 되고 그 다음에 20년 지난 다음에 완성이 됐거든요. 그 사이에 빌바오 구겐하임을 만들면서 이 사람이 기술적으로 CAD CAM을 터득을 합니다. CAD CAM은 컴퓨터 에이디드 디자인, 컴퓨터 에이디드 매니팩트링의 약자예요.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서 설계하고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서 제작한다. 이런 뜻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아까 말씀드린 자동차 프레임 만들듯이 그런 프레임 만들어서 공면을 만드는 그런 방식을 디트로이트하고 협업을 해서 현실화시켰죠. 그러니까 옛날에 각 층마다 평면이 곡선으로 다른 거로는 만족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디자인을 확 바꿉니다. 그래서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지금의 여러분들이 LA에 가면 볼 수 있는 디즈니 콘서트 홀인데 진짜 그 작품이 저는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프랭크 게리 작품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요. 각 건축가들마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 것 같아요. 프랭크 게리같이 형태를 막 만드시는 분들은 뭘 잘할 수 있냐면은 미술관과 음악당을 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은 이분의 디자인의 어떻게 보면 한계점이라고 할 수 있는 거는요. 창문을 뚫으면 그 힘이 약해집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막 이런 형태를 만들었는데 여기에다가 창문을 빵빵이 창을 계속 뚫어요. 그럼 창문만 눈에 뜯이고요. 형태감이 안 살거든요. 그래서 이분이 제일 멋있게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은 창문이 없는 건물을 만들 때예요. 그런데 제일 대표적인 창문이 없는 건물이 뭐냐? 미술관하고 음악당입니다. 그중에서도 미술관은 이게 곡선으로 됐을 때 약간의 제약이 있어요. 뭐냐면 결국엔 전시장 벽은 좀 평민이 많아야 되거든요. 이 공면을 많이 만들더라도 내부에 전시하는 그림 거는 병은 또 직선으로 만들어야 되는데 음악당 같은 경우에는 공면이 더 유리할 때가 많거든요. 공면을 만들면 음향이 난반사되게 할 수도 있고 그래서 디즈니 콘서트를 내부에서 가서 보시면 정말 훌륭합니다. 인테리어도 되게 훌륭해서 밖에서 봤던 그러한 공면으로 되는 느낌하고 비슷하게 안쪽에도 공면이 있는데 1층하고 2층의 층고도 거의 구분이 없어요. 왜냐하면 1.5층 같은 걸 만들어서 객석도 하나로 연결돼 보이게 하고 음향적으로 봤을 때에도 그런 불규칙성은 콘서트홀에 유리하기 때문에 안팎으로 이분이 자기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프로그램은 넘버 1이 콘서트홀, 넘버 2가 미술관 이렇게 볼 수 있어요. 프랭크 게리의 뒤를 잇는 그런 곡선으로 아름다운 형태를 만드시는 자아디드라는 건축가 있죠. 그 자아디드라는 건축가도 그분도 자기의 능력을 극대화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결국에는 음악당하고 미술관 이런 것들이 많고요. 물론 전체를 글라스로 만들어서 오피스 빌딩 같은 것도 자아디드는 잘하죠. 저는 개인적으로 디즈니 콘서트홀이 이 사람의 대표작이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 하나 되게 흥미로운 거는 프랭크 개리가 디자인을 할 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쳤던 자기 커리어에서 큰 계기가 됐던 프로젝트가 삼성미술관이라고 있어요. 이게 경복궁의 동쪽에 있는 어떤 사이트였던 걸로 아는데 삼성재단에서 미술관을 하나를 기획을 했어요. 그게 리운미술관이 만들어지기 전입니다. 디자인도 다 끝냈고 막 곡선으로 돼 있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거를 프랭크 개리가 되게 기대를 많이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무슨 이유에선지 중단이 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프로젝트에서 자기네들이 디자인하면서 그때 테스트했던 그 많은 기술을 그대로 적용해서 만든 게 빌바오 구겐하임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만약에 프랭크 게리가 첫 번째 그 작품을 우리 삼성미술관에서 만들었더라면 그럼 되게 임팩트 있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서울에 하나 서는 게 될 수 있었겠죠. 안타깝게도 혁신적인 건물이 통과를 못했던 것 같고요. 이 프랑크 게리가 어떻게 이게 건물을 만드는 데 컴퓨터를 이용했는가 이게 되게 중요한 부분인데 저는 항상 프랑크 게리를 이해하려면 피터 아이자만을 이해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피터 아이자만이라는 사람은 처음에 해체주의 철학이라는 걸 이용해가지고 새로운 건축을 해보려고 했으나 실패를 했고요. 여기서 실패했다는 얘기는 많은 건물이 지어지지는 못했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런 다음에 이 사람이 한 거는 컴퓨터랑 연합을 해가지고 새로운 형태를 쉽게 컴퓨터상에서 만드는 캐드를 이 사람이 잘 합니다. 오토데시스라는 회사와 폼지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막 희한한 형태를 만들고 그래요 그래서 이 사람이 여기서 테스트로 성공을 한 다음에 그 다음에 프랭크 게리도 적극적으로 컴퓨터를 쓰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쯤에 90년대에 우리가 갖고 있었던 기술은 뭐였냐 퍼스널 컴퓨터 당연히 갖고 있었고요 여러 가지 종류의 컴퓨터 소프트웨어도 갖고 있었는데 새로운 기술이 하나 나온 게 디지타이저라는 게 나왔습니다 3D 디지타이저 펜이 하나 있어요 그 펜을 내가 예를 들어서 이렇게 조각품이 있으면 펜을 표면에다 딱 대고서 클릭을 하면 이 컴퓨터 상에 그 지점에 XYZ 좌표가 딱 입력이 돼요. 그러면 예를 들어서 제가 아그리파 상이 있으면 아그리파 상에 점을 막 엄청나게 계속 수백 개를 찍잖아요. 그러면 이 아그리파의 모형이 3D로 모델링이 돼가지고 안에 디지털 데이터로 만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이 기기를 이용해서 프랭크게리가 어떻게 설계를 하냐면 종이를 구겨가지고 던져놓고서 마음에 드는 형태가 있으면 그걸 3D 디지털로 찍어요. 그러면 그 구겨진 종이의 공면의 형태가 그대로 여기 나올 거 아닙니까? 그러고 난 다음에 그거를 컴퓨터 상에서 조금조금씩 움직이고 바꿔가지고 바꿔서 형태를 완성해서 미술관의 형태를 만드는 겁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그걸 다시 모형으로도 만들어보고 제가 인상적인 것은 이분이 컴퓨터 상에서만 작업을 하는 게 아니고 그걸 또 엄청나게 큰 스케일로 모형을 만들어서 그 안에 들어가서 쳐다보고 돌려보고 이런 걸 하거든요. 그래서 그 작업들을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이런 작업을 했다. 그 당시로서는 사실 되게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걸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이용을 하는 거죠. 요즘으로 치면 인공지능이 처음 나와서 적용되기 시작하는 단계인데 이거를 나의 디자인에 되게 적극적으로 적용을 해가지고 써보는 그런 거랑 비슷하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장 아티스틱한 형태를 만드는 사람이지만은 동시에 가장 기술적으로 앞서나갔던 그런 실험적인 기술을 적용해봤던 그런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훌륭한 건축가, 성공한 건축가 뒤에 후견인이 꼭 있잖아요. 진짜 부러운 게 이 프랭크 게리의 최고의 팬이라고 할 수 있는 건축주가 누구냐. 그게 아르노 회장이에요. 루비통하고 온갖 명품 다 갖고 있는 그분 그분이 이분의 큰 팬이기 때문에 그래서 아시다시피 우리 청담동에도 루비통 매장은 프랭크 게리가 파사드를 리모델링 했고요 파리에 가시면 볼 수 있는 엄청난 루비통 파운데이션에 미술관이 하나 있거든요 무제한의 시공비를 들여가지고 그렇게 디자인을 해서 역사에 남을 만한 작품을 하나 만들게 있죠 한국에 있는 루비통 플렉스토어의 특징은 유리로 그 공면을 만들었다는 점이에요 이분이 빌바오 구겐하임을 하고서 티타늄이라는 걸로 했거든요. 그 치과에 가서 보철 같은 거 하면 여기다 신경 치료한 다음에 막 힘 박는 거 있어요. 우주선에다가 쓰고 되게 비싼 금속이 있는데 그 티타늄의 특징이 들어오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조금씩 바뀌거든요. 그래서 이 프랭크게리가 되게 즐겨 쓰는 재료입니다. 가격은 비싸지만은 이 사람의 디자인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재료인데 티타늄을 써가지고 그 표면을 막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그 쯤에서 저기 뉴욕 맨하탄에 가면 오피스 빌딩에 그 회사 직원들만 갈 수 있는 카페를 하나 설계한 게 있어요. 근데 그 카페 설계할 때의 특징은 뭐냐? 카페에 좌석이 불규칙하게 배치되어 있고 그 사이사이를 나누는 파티션들이 다 공면으로 되어 있는 유리벽으로 되어 있는 그런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습니다. 근데 그게 진짜 웬만한 건물 짓는 것보다 더 비쌌다고 해요. 왜냐하면 금속은 그냥 휘면 휘잖아요. 근데 유리는 그냥 휘게 할 수가 없죠. 그래서 그 공면의 형태를 틀을 짜고 유리를 달군 다음에 거기다 눌러가지고 그 형태를 만들어야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 유리 한 장 한 장의 형태가 다 다르다는 얘기는 그 형태를 짜기 위한 그 프레임을 다 다르게 제작을 해낸다는 소리고 이거를 만든 다음에 옮기는 과정이 깨질 수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또 두 장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공사비가 되게 많이 들어가는 일이에요. 그래서 거기서 카페에서 한번 테스트를 해봅니다. 공면 유리를 많이 테스트를 해보죠. 물론 일반 구겐하임에도 공면으로 된 유리의 부분이 있기는 있어요. 청담동에 있는 뉴비통 건물의 특징은 100% 그러니까 앞쪽에 있는 메인 파사드가 다 공면 유리로 처리가 돼 있잖아요. 전체가 다 유리로 되어 있는 공면이기 때문에 규모는 별로 크지 않지만 프랭크 게리가 애착을 갖고 있는 그러한 프로젝트라고 해요. 실제로 오픈할 때도 오셨거든요. 저도 그때 처음으로 그분을 1대1로 만나서 사진도 찍고 그랬었는데 그분이 되게 나이가 많은 상태에서 서울까지 오프닝에 올 정도면 애착을 가진 건물이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프랭크 게리 레즈니스 콘서트 홀이죠. 이 프랭크 게리의 계열이 아까 가우디라는 되게 비슷하다고 했잖아요. 가우디의 뿌리를 찾아가면 바로크 양식이 있거든요. 바로크의 특징은 뭐냐. 바로크라는 것을 지격을 하면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이에요. 바로크 양식이 나오게 된 이유는 뭐냐 하면 종교개혁이 있었습니다. 그쯤에 어떤 현상이 생기냐면 구교에 대해서 사람들이 중세가 끝나고 끝날 즈음에 르네상스 생기고 이러면서 구교에 대해서 되게 안 좋은 반발작용으로 해서 신교인 개신교가 나오기 시작을 하고 그러면서 구교 측에서는 조금 더 우리가 감성적인 뭔가를 해야겠다. 이런 움직임에 의해서 바로크 양식이 나오기 시작하는 거거든요. 찌그러진 진주라는 거는 형태가 아주 합리적이고 오토독스한 그런 딱 떨어지는 형태가 아니고 감성적인 형태잖아요. 그래서 그거를 이 사람들이 건축에 적용을 해서 그 당시에 바로크 시대의 조각품 같은 거 보시면 옷이 막 뿔뿔뿔뿔하게 구겨진 것 같은 것들 3차원 공면을 되게 많이 써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그 당시에는 할 수 있었던 건 뭐냐 대리적을 깎아가지고 형태를 만드는 것 못하거든요. 그러니까 장식적으로밖에 못 쓰는 거예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창문이 있으면 네모나게 만들고 그 주변의 창틀 주변을 그런 곡면으로 장식을 한다든지 이 정도까지밖에 안 됐던 거죠. 그런데 그게 이제 좀 더 극단적으로 나와서 창문의 모양도 곡선으로 나오고 하는 것들이 그게 이제 가우디 같은 사람이 되는 거죠. 그러면서 그게 더 나아가면 프랭크 그라이터 같은 건축가가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바로크에서는 장식으로밖에 못 쓰던 거를 이 사람은 아예 건물 자체가 찌그러진 진주 같은 형태를 만들어가지고 내부에서도 그런 공간감이 나오게 하고 바깥에서도 그런 찌그러진 진주의 형태를 가지게끔 하는 바로크부터 가우디를 거쳐서 프랭크게리까지 왔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진짜 이 작품은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요. 저도 나이가 먹을수록 점점 곡선이 좋아지더라고요. 우리 직원들이 별로 안 좋아요. 자꾸 이상한 곡선 쓰려고 한다고. 그런데 곡면이 주는 확실한 감동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주택이 커리어 초창기에 자기 집을 개조한 거예요. 그 당시에 해체주의 건축의 하나의 큰 사례로 나타났습니다. 일반적으로 박공지붕이어야 되는데 박공지분 가운데 뚝 잘라가지고 놓고 박스 형태를 45도 45도 이렇게 비틀어가지고 세워서 유리인지 아크릴인지를 만들고 그러니까 진짜 형태가 너무너무 독특한 형태를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이때부터가 이 사람은 진짜 예사로운 사람은 아니구나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이거는 비틀어 디자인 미술관이라고 만들어놓은 겁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말도 안 되는 형태 만들던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어쨌든 이 작품에서도 되게 평면적으로는 되게 복잡하게 돼 있고 지붕의 모양도 막 사선으로 돼 있고 하는데 벽은 대부분 다 90도로 서거든요. 이분이 얘기하는 그런 물고기의 역동성 같은 벽과 천정과 지붕이 구분이 안 가는 그러한 디자인은 아니고 우리가 제도판에서 그림 그려서 상상할 수 있을 정도의 그 정도의 건축을 했던 분이죠. 그리고 나서 이게 미네소타 와이스먼 미술관이라는 게 나오는데 93년도에 완성이 됐어요. 이게 약간 빌버, 구게나인 바로 전 단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공면인데 한쪽 파사드 이게 아마 강가에 지어진 걸로 알고 있는데 그쪽에 있는 파사드만 막 이렇게 복잡한 금속 형태로 되어 있는 게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거는 인터넷 짤로 많이 돌아가지고 아는 거죠. 96년도에 프라하에 가면은 댄싱하우스라는 빌딩이 하나 나오는데 유리로 된 건데 막 이렇게 휘어있고 옆에 원통형의 빵빵이 있고 저도 그 당시에 프라하 갔을 때 이거 완공된 걸 봤는데 오른쪽 원통형의 빵빵이 창문 따로 놀고 유리로 된 거 따로 물론 이게 남자와 여자를 상징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둘이 같이 춤추는 거라서 이렇게 다른 걸로 돼 있고 그런데 갑자기 또 이 남자로 상징될 수 있는 하얀색 여기 위에는 머리카락같이 삐쭉삐쭉하게 되어 있는 뭐 하나 있거든요. 제가 볼 때는 그렇게 아름답다고 느끼지는 않았어요. 이걸 보면서. 창문이 있으면 프랭크 게리의 캐릭터가 확 드러나게 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분이 설계한 아파트도 있거든요. 아파트나 이런 걸 보시면 표면은 게리 스타일로 만들어요. 그런 다음에 우글쭉글에 구겨진 종이 같은 그런 걸 만들고 거기다가 빵빵이 창문을 뚫어서 그게 돌출되게 튀어나오게 합니다. 베를린에 가도 그런 게 하나 있고 그 랭기지는 계속 쓰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예 커튼홀로 해서 공면 유리를 쓰던지 아니면 다른 재료로 꼬불꼬불한 형태를 만들고 빵빵이 창을 돌출되게 뚫던지 항상 그 둘 중에 하나더라고요. 저는 이건 개인적인 취향인데 제가 빌바오 구겐하임과 디즈니 콘서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되게 역동적인 형태가 있는데 그 역동적인 형태를 보일 수 있는 기본 레퍼런스 기준점이 되는 게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그래요. 빌바오 구겐하임은 이런 물고기 형태지만 바로 옆에는 수면이 쫙 있잖아요. 항상 수평으로 되어 있는 그런 기준점이 있기 때문에 그게 아름다워 보이는 거고 디즈니 콘서트홀 같은 경우도 아름답지 않은 LA의 그런 천란한 형태가 있는데 그게 돋보이는 이유는 밑에 베이스가 딱 돌로 만들어진 기단이 딱 있기 때문인 거죠. 분재를 우리가 하지 않습니까? 분재가 막 아름다운 자연이에요. 아름다운 자연의 형태를 딱 받치고 있는 화분이 있죠. 근데 그 화분 밑에 보시면 화분 베이스가 있습니다. 그 화분 베이스가 나무로 아주 잘 깎아서 만든 베이스가 하나 있거든요. 그 베이스 판이 있고 거기다가 화분을 놓고 그 위에 막 이런 복잡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보여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 프랑크 게리의 작품에서 제가 좋아하는 그 두 개의 작품은 그 밑에 레퍼런스가 될 수 있을 만한 기준점이 될 수 있을 만한 것이 마치 분재 화분의 그 베이스 같이 딱 받쳐주고 있어서 그게 더 돋보이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근데 랜싱하우스 이런 거는 보면 너무 다 정신없기만 한 것 같고 그래서 너무 많은 요소들이 있어서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은 저 같은 사람한테는 좀 과하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반대로 저희 사무실에서 했던 프로젝트 중에 하나는 자연에다가 막 들어가는 미술관이 하나 있는데 자연이 워낙에 변화가 많잖아요. 그럼 그 자연의 변화를 오히려 반대로 느끼게 하려면 건축물은 샘플한 기준점이 돼야 된다. 가지고 직선으로 되어 있는 터널과 튜브 같은 걸 하나 딱 그냥 꽂아놓은 게 있거든요. 그게 기준점이 되어서 오히려 주변에 있는 변화를 더 느껴라. 그런 반대되는 걸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프로젝트의 이름이 오선지예요. 한국말로 하면은. 그 멜로디라는 게 음계가 나오려면 오선지라는 다섯 줄의 기준점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다 높은 자리표 같은 거 딱 쓰고서 그게 틀이 돼야지만 그 안에서의 변화들을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거잖아요. 마찬가지로 미술관에서는 기준점을 만드는 거고 프랭크 게리 같은 경우도 저 복잡한 형태가 멜로디 같은 음계의 차이라면 그거를 우리가 더 느끼게 하려면 기준점이 필요한 거죠. 뮤지엄 오브 팝컬처는 형태 엄청 다양한데 재료가 색깔이 다 다양해요. 저한테는 좀 투머치가 아닌가 아름다운 도시가 형태는 다양한데 재료는 단순한 경우라고 했잖아요. 디즈니 콘서트홀이 딱 대표적이라고 그래요. 그렇게 생각해요. 형태는 되게 복잡한데 재료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딱 통일이 되어 있잖아요. 그럼 아름다운데 아름답지 않은 도시 중에 하나가 형태도 다양하고 재료도 다양한 경우라고 했어요. 물론 음악의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했다. 얘기를 하시는데 약간 좀 투마치였던 것 같아요. 제가 이거 여기 가봤거든요. 루마 아를 프랑스 아를에 가면 볼 수 있는 미술관인데 딱히 저는 그렇게 멋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엄청난 공사비를 들어서 빌버우 구겨나임만큼의 임팩트를 만들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닥 저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별로였던 것 같고요. 저는 이거 완공되기 전에 모델하우스만 가봤거든요. 런던에 갔을 때. 런던에 가면 굴뚝이 4개인 발전소 같은 게 하나 있어요. 근데 그게 독일이 엄청나게 폭격을 했는데 런던 시내를 다 초토화시키는데 그 굴뚝만 남아있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그랬더니 독일 분들이 비행기가 왔을 때 런던을 폭격할 때 기준점이 필요했던 거예요. 어디다가 투하를 해야 될지. 그래서 그 굴뚝은 남겨놨다고 그러더라고요. 그게 어떤 헤르티지로 남아있는데 거기를 주거단지로 리모델링해서 우리나라로 치면 약간 판교같이 바꾸는 그런 프로젝트였는데 거기 건물 중에 하나를 프랭크 게리가 설계를 했더라고요. 이 주거 아파트를. 보시는 것처럼 게리의 특징이 잘 드러나지는 않죠. 저는 개인적으로 정말 기대하고 있는 게 이 아부다비 국의 나임입니다. 이거 정말 완공되면 한번 저희 유튜브에서 한번 꼭 가보고 싶어요. 아부다비에는 이미 장르벨이 어마어마하게 훌륭한 미술관이 하나 있죠. 루브르 미술관. 구겐하임이 얼마나 좋을지 저도 한번 가서 느껴보고 싶어요. 안전하지 않다는 게 구조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건 아닐 거고요. 사실 문제가 많이 됐었어요. MIT에 그게 지어졌는데 프랭크 게리가 빌바오 구겐하임을 짓고서 엄청나게 유명해졌잖아요. 근데 빌바오는 스페인이 있잖아요. 스페인은 기가 거의 안 내리는 데예요. 정말 저는 스페인 건축가가 엄청 부러운 게 뭐냐면 세상에 방수와 단열을 제일 생각하지 않고서 지을 수 있는 나라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비도 거의 안 내리고 춥지도 않고 그래가지고 단열재가 없어 건물에. 방수를 걱정 안 해도 돼요. 그러니까 보통 건축계에서 되게 형태적으로 난리치는 건축을 하는 건축가들이 있는데 대부분 다 캘리포니아 베이스예요. 프랑크게리도 그렇고 몰포시스라는 건축가도 있거든요. 진짜 말도 안 되는 디자인 아까 보셨던 프랑크게리 하우스 있잖아요. 그거를 만약에 서울 시내에다 짓잖아요. 그러면 진짜 장마철 한 번 지나면 홍수 나고 겨울철에 추워서 못 살아요. 결로 생기고 이래가지고 그러한 디자인, 파격적인 디자인을 하기 어려운 땅이거든요. 그나마 저는 이 프랑크 게리가 성공적으로 첫 단추를 빌바오에다가 했던 거는 그런 행운이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은 좀 들어요.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특별하게 많이 비나 이런 거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었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던 것 같고요. 그러고 나서 유명해진 다음에 전 세계 건물을 짓는데 이 보스턴은 정말 이 뉴 잉글랜드 지방은 정말 서울 못지않게 아주 최악이거든요. 겨울이 6개월이에요. 4월에 눈 내리고 그런단 말이에요. 그 캘리포니아에서 건물을 짓다가 스페인 같은 데서 건물을 짓다가 이런 분이 이제 이 뉴 잉글랜드에다 지은 눈이 맨날 쌓이고 쌓인 눈이 녹으면서 그 틈새로 들어가고 다시 얼고 그러면서 틈새가 다시 벌어지고 이러면서 방수에 되게 문제가 많았다고 들었어요. 이분이 또 철판으로 이걸 만드시잖아요. 그러니까 그 틈새도 되게 많고 이래저래 여러 가지로 고생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단열과 방수가 정말 어려운 동네에 건물을 지었을 때 이러한 자유로운 형태를 가진 건축가들이 되게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아마 M&T 건물도 얘기가 나왔던 것 같아요 세계적인 건축가들마다 대표작들이 나중에 돌아가시고 나면 하나씩 남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빌바오 구게나임이냐, 디즈니 콘서트홀이냐, 루비통 파운데이션이냐 이 셋 중에 하나일 거라고 보거든요 저의 원픽은 디즈니 콘서트홀이지만 루비통 파운데이션도 정말 만만치 않습니다 이것도 정말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재료도 다양하고 형태도 복잡한데 그런데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런 건물이었어요. 그러니까 저도 이걸 보면서 느끼는 게 96세까지 그렇게 왕성하게 활동을 하신 이런 대표적인 건축가조차도 대표작을 꼽는 게 열몇 개로 꼽힌다는 게 정말 놀라운 것 같아요. 건축가가 얼마나 하나의 건물을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이걸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몇 개로 기억이 되는 것 같아요. 결국에는 프랭크게리는 뭘 남겼느냐? 그러면 저 같은 사람은 디즈니 콘서트홀과 빌버 구겐하입니다. 이렇게 딱 기억을 하거든요. 나머지 훌륭한 건물들이 또 되게 많지만 결국에는 몇 개 안 되는 한 3개 정도의 대표작으로 기억이 되는 것 같아요. 심지어 가장 존경하는 루이스 칸 같은 건축가도 킨벨 아트 뮤지엄, 엑서 라이브러리, 소프 인시티투트 이렇게 딱 3개 정도로 저는 기억을 하거든요. 안도는 뭐냐? 저는 개인적으로는 물의 교회, 빛의 교회, 바람의 교회 교회 시리즈가 제일 훌륭하지 않나 물의 교회, 빛의 교회, 아주마 하우스 이 정도일 것 같아요. 네, 그럼 이번 시간에는 저희 프랭크 기리의 삶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몇십 년 동안 자기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진화시켜 나간 분이었고요. 그다음에 그 과정 중에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IT 기술도 적극적으로 수용을 해서 본인을 진화시킨 그러한 대표적인 건축가가 아니었나 생각을 합니다. 다음 시간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한글자막 by 한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