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몰라도-바우하우스는-알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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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도대체 바우하우스가 왜 그렇게 대단하냐? 우리는 지금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죠. 그거를 그냥 그분이 거의 처음 하셨다고 봐야 되는 거예요. 여기서 이제 국뽕 한 스푼을 넣으면 바우하우스가 1900년대 초반에 했던 거를 몇백 년 앞서가지고 이미 한글은 그걸 쓴 거죠. 아, 이게 진짜 정말 천재란 이런 거구나. 네, 안녕하세요. 왓슨 여러분. 이번 시간에는 바우하우스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지난 한 두 달 전쯤인가에 이유있는 건축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대사후에 있는 바우하우스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 감동적이어서 여러분들하고 한번 나눠보고 싶어서 이 편을 찍습니다 이 바우하우스는 한 번은 들어보셨을 거예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죠 도대체 뭐하는 데인가? 이게 왜 만들어졌는가? 이게 왜 유명한가? 이걸 좀 잘 모르실 거예요 이 바우하우스는 1919년에 만들어진 학교입니다 그 시대적 배경을 좀 알 필요가 있어요 1919년이면 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죠 그리고 1차 세계대전에 패전한 독일에서 만들어진 학교입니다. 배경 자체가 역사적으로 독일이 엄청나게 피폐해졌던 당시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사람들은 다 가난해졌고 많은 물건과 집들이 필요한 시기죠. 그러니까 이 사람들을 위해서 집도 공급해줘야 되고 많은 물건도 생산해서 줘야 되는데 그러다 보니까 과거에 1800년대에 만들어진 것처럼 수공예로 만들고 하나하나 장식을 넣고 이렇게 해서는 그 많은 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는 거죠. 당연히 표준화와 대량생사, 약간 근대주의 사고의 근거에서 뭔가를 만들고 디자인을 해야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이게 완전히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하나의 패턴인데 장식이 없는 디자인, 한마디로 표현하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영어로 얘기하면 form follow function이라고 하죠. 근대주의 디자인의 아주 상징적인 모토죠. 그걸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정신이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초대 교장이 월터 그로피우스라는 사람이 특별한 생각을 가졌는데 뭐냐면 중세시대 때 고딕성당 같은 걸 만들던 걸 롤모델로 삼은 거예요. 대성당을 만들 때 딱 보면 건축을 중심으로 해서 거기 조각도 들어가고 글자도 들어가고 여러 가지 것들이 다 건축을 중심으로 해서 디자인들이 다 링크가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학교를 만들 때에는 그렇게 만들어야겠다. 건축을 중심으로 해서 다른 디자인 분야들이 다 옆에 붙어 있는 그런 커리큘럼을 짜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한 겁니다. 정말 대단한 게 거기에 우리가 들어본 유명한 사람들 되게 많이 나옵니다. 칸딘스키라는 사람 아시죠? 그 사람도 여기 선생님이었고 요하네스 이튼이라는 사람도 되게 유명한 사람이거든요. 이 사람도 여기 선생님이었고 그리고 말셀 브로이어라는 사람 영화 브루탈리스트에 나온 그 주인공을 만들 때 롤모델로 벤치마크했던 사람이거든요. 파이프로 만들잖아요, 자전거를. 그거를 착안해가지고 가구를 만드신 분이에요. 헝가리 출신의 사람인데 이분이 바우하우스의 학생으로 시작을 했다가 나중에 선생님까지 되는 그런 일을 합니다. 그리고 미스 반델로에가 또 여기 출신이죠. 3대 교장입니다. 초대 교장이 월터 그루피우스고 2대가 전 이름은 모르지만 되게 공산주의자가 한 명 계셨는데 이분이 그래서 나치의 탄압을 되게 많이 받았던 분이 있고 그분이 떠나시고 3대 교장이 미스 반델로에가 온 거죠. 그런데 3대 교장이 왔을 때쯤에는 이미 나치가 너무 탄압을 해가지고 다 공중분해됩니다. 사실은 바우하우스가 있었던 기간은 그렇게 길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워낙에 임팩트가 있는 거죠. 바우하우스가 데사오에 있을 때는 물론 훌륭한 학교였지만 그 정신이 전 세계에 퍼지게 된 이유는 디아스포라가 생겼기 때문인 거예요. 나치가 거기를 박해하고 공중분해 시켜서 다 흩어지니까 전 세계로 흩어졌는데 그중에서 제일 많이 간 데가 어디겠어요? 미국으로 많이 갔죠. 미국이 또 2차 세계된 이후에 엄청나게 부흥을 했으니까 그거에 편승해서 월터 그루피우스라는 사람은 하버드에 가서 건축 교육을 했고요. 그 다음에 미스 반들러에는 IIT라고 일리노이 인스트리트 오브 테크놀로지라는 학교가 있습니다. 거기에 건축 대학을 또 만드셔서 후학을 양성을 했고 훌륭한 건축 작품도 되게 많이 지었죠. 시그랜 빌딩 등등 해서 근대 건축에 엄청난 족적을 남기신 분이죠. 그런 식으로 영향을 끼쳤고 그래픽 디자인 쪽으로도 그렇고 모든 분야로 다 갔습니다. 그래서 20세기의 이 바우하우스를 빼고서는 디자인 분야에서는 얘기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럼 이 도대체 바우하우스가 왜 그렇게 대단하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곳이 특별한 것은 그 이전에 있었던 18세기, 19세기까지 있었던 전통적인 건축과 완전히 선을 긋는 새로운 걸 시작을 하는데 일단 건축 분야는 어떤 다른 점이 있냐면 제가 셜록 편집에서 많이 말씀을 드렸다시피 서양 건축은 벽 중심의 건축이잖아요. 집안이 단단하고 석회암 집안이라서 배수가 잘 되고 1년에 비도 850mm밖에 안 내리고 장마철도 없고 골고루 내리니까 돌이나 벽돌을 주 재료로 써서 건축을 해요. 그러니까 단단한 벽이 구조체가 되는 벽 중심의 건축인 거죠. 그럼 창문이 조그맣게 뚫린다고 했잖아요. 그게 일반적인 건축입니다. 그런데 재료가 완전히 바뀌어요. 근대건축에 와서 철근 콘크리트로 재료가 바뀌니까 벽 중심의 건축이 아니고 기둥 중심의 건축을 하죠 그게 르코오르비제가 되게 발빠르게 근대건축의 5원칙 딱 해가지고 자기의 전매특허처럼 리스트를 만들었잖아요 필로티, 자이론, 인면, 가로로 긴창, 옥상정원 이런 걸 딱 얘기를 한 건데 사실은 그 근본은 이미 시작이 된 거예요 철근 콘크리트로 건물을 지으면서 시작이 됐거든요 그래서 월터그로피우스가 설계한 바우하우스 데사우에 만들어진 건물을 보시면 제일 큰 특징은 뭐냐면 창문이 가로로 길죠. 거의 전면이 창문이에요. 우리는 지금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죠. 커튼월로 되어 있는 건물은 사방천지에 깔렸잖아요. 그거를 그냥 그분이 거의 처음 하셨다고 봐야 되는 거예요. 뭐가 다르냐. 기존에 있었던 서양건축은 벽이 있고 구멍이 뚫린 다음에 유리창이 끼어지잖아요. 이거는 기둥은 뒤쪽, 구조차는 뒤에 있고 유리창이 앞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유리창이 기둥보다 앞쪽에, 바깥쪽에 붙어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구조차가 안 보이죠. 유리창이 커튼처럼 내려졌다고 해서 커튼월이라고 하는 거예요. 또 바우하우스의 중요한 포인트가 코너입니다 유리창이 쭉 가다가 코너를 돌아서 유리창이 가요 기역자 모양으로 그래서 우리 낙수장 할 때도 한번 제가 말씀을 드렸죠 코너를 유리창으로 돌린 거가 되게 중게 중요하다. 그런 말씀을 드렸는데 거의 여기가 원적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전면이 다 유리로 되어 있고요. 심지어는 유리창이 층간을 슬라브하고 슬라브 다른 층간에도 연결되게끔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완전히 건물 벽 안에 갇혀져 있는 유리창이 아니고 건물을 거의 감싸고 도는 바깥쪽으로 도는 층간도 경계도 허물고 코너 모서리도 경계를 허무는 그러한 창문이 나왔다. 이게 되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제 여기서 되게 중요한 이게 되게 논란거리가 될 만한 건데 이게 제가 방송에서 얘기할 때가 다 통편집이 됐지만 여기서는 얘기할 수 있는데 이때 창문이 가로로 긴 약간 직사각형이 나와요 통편집이 왜 됐냐면 이게 약간 일본의 창틀하고 비슷하다는 얘기가 나왔거든요 이건 제 이론이 아니고 제가 하버드에 있을 때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하신 말씀이에요 당연히 제일 중요한 거는 산업화된 재료인 철과 유리를 썼다는 거가 중요하지만 디자인의 스타일로 봤을 때는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거예요. 젠 디자인 스타일을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창틀을 만들고 거기 창호지를 붙여서 창문을 만드는데 그 바우하우스를 보시면 창틀의 모양이 세로로 길게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가로로 긴 직사각형을 만들고요. 거기에 이제 창호지 대신에 유리창을 끼는 거죠. 그리고 그 외에도 인테리어적으로 봤을 때에도 바이썬오프 시들롱이라고 하는 실험적으로 근대 주택을 짓는 그러한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거기에 루코오르비제도 내고 미스판드로에도 내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이 진행됐는데 예전에 저희 때는 PPT가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슬라이드 기계 두 개를 놓고 프로젝터를 쏘서 보여주는데 이미지 두 개를 한쪽에는 바이선옵세드렁에서 만들어졌던 아주 미니멀한 노동자의 근대주택을 보여주고 또 한쪽에는 일본의 인테리어 디자인 있죠 아주 미니멀한 벽체로 되어 있고 거기에 나무 선반과 뒤에 그림 걸려있는 그런 걸 딱 보여줘요 그래서 이런 데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이렇게 분명히 얘기를 하셨어요 뭐 받아들이기의 마음이죠 그거는 국뽕이 차신 분들은 수용 못하실 얘기고 그런데 어쨌든 영향을 많이 끼치긴 했다고 저는 봅니다. 이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를 열려는 사람들이었고 온갖 때에서 영감을 얻어야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가 또 엑스포가 많이 열렸기 때문에 엑스포에서 사람들을 끌어당기기 위해서 이국적이고 이런 느낌들이 나는 파빌리온 같은 것도 많이 짓고 그랬어요. 그래서 중국과 이번에 파빌리온들이 많이 지어졌기 때문에 그런 건축을 보면서 영감을 많이 얻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되게 동양적인 가치들이 산업화된 재료와 함께 합쳐져가지고 디자인으로 승화된 게 이 바우아스에 보여지는 많은 특징 중의 하나다. 이렇게 저는 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하나가 이 바우아스 폰트가 세로로 쭉 써 있어요. B-A-U-H-A-U-S 그렇게. 그 간판이 왜 유명하냐 하면 그 글자가 세로로 돼 있다는 거예요. 서양의 모든 글자들은 다 가로로 글자가 써 있거든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렇게 가로로 써 있죠. 근데 우리는 동양에서는 옛날에 한자 책들, 천자문 이런 거 보시면 다 세로로 돼 있죠. 훈민정음도 세로로 돼 있잖아요. 우리가 가로 쓰기를 한 지 얼마 안 됐단 말이죠. 동양적인 거예요. 사실은 세로로 이 글자를 내려 쓴다는 거는 그러니까 똑같은 글자를 이렇게 세로로 쫙 썼다는 것 자체가 이 사람들이 동양의 가치들과 문화적 특징들을 융합해서 사용하는 거구나. 제가 이제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동양이 서양보다 더 우수하다 이런 얘기를 말씀드리는 게 아니고 이 바우하우스라는 학교를 운영했던 사람들의 철학이 다양한 문화를 흡수해서 새롭게 융합시켜서 자기만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단체였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은 거예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몇천 킬로 떨어져 있는 곳에 새로운 것들을 다 답습을 해서 그거를 자기 걸로 만든 거죠 그게 대단하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이 바우하우스라고 하는 폰트예요 되게 유명하죠 심플한 폰트인데 그게 왜 대단하냐 하면요 그 전에는 만들어졌던 게 부텐베르그의 금속활자가 나와서 성경책들도 많이 만들어지고 책도 많이 만들어졌어요 근데 그 당시에 글자 한번 보세요 읽을 수가 없어요 무슨 진짜 메소포타미아 쇠기문자 보낸 것 같아요 엄청나게 복잡해서 가독성이 너무너무 떨어져요 그런데 알파벳을 동그라미와 직선으로 완전히 심플하게 만들어서 그 유명한 바우아웃 폰트를 만듭니다. 그게 지금 뭐 돌츠 앤 가바나나 아니면 프라다나 이런 데다 쓰이는 그런 기본적인 폰트가 되는 거거든요. 투트라 폰트라든지 뭐 있어요. 그런 것들이 다 오리지날리티는 타이포그라피를 디자인했던 바우아웃을 시작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걸 보면서 되게 대단하다고 느낀 게 그게 딱 동그라미와 직선으로 디자인된 게 우리나라 한글이잖아요. 세종대왕이 진짜 몇백년 앞서 나가신 분인 거예요. 여기서 국뽕 한 스푼을 넣으면 바우하우스가 1900년대 초반에 했던 거를 몇백년 앞서가지고 조선 초기에 이미 한글은 그걸 쓴 거죠. 그래서 우리는 가독성이 엄청 좋은 거예요, 한글이. 그래서 이게 진짜 정말 천재란 이런 거구나. 그런 느낌을 제가 받았어요. 바우하우스가 실제로 되게 유명해진 거는 애플 때문이죠. 바우하우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서 그 스피릿이 그대로 전수된 게 디터람스라는 디자이너가 있죠. 디터람스는 실제로 바우어스를 다닌 사람은 아니고요. 바우어스의 정신을 이어받은 학교에서 디터람스가 이 디자인을 배웠고 그게 그대로 조나탄 아이브한테 넘어가서 미니멀한 디자인이 된 거죠. 그게 이제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하고 맞아떨어진 거죠. 동양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스티브 잡스가 왜 그런 미니멀한 젠 스타일의 디자인을 좋아했는가. 조나탄 아이브가 디터람스랑 이결되고 디터람스가 바우어스와 이결되면 바우어스가 아시아의 젠 디자인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했잖아요. 그게 다 이렇게 일맥상통하는 게 있는 거예요. 물론 기본에는 산업 제품을 만드는 디자인이라는 것도 바닥에 깔려 있는 거고 디자인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공통분모가 만들어지는 거죠. 이 바우하우스에 가면 일단은 배치도를 딱 보시잖아요. 그 배치도가 독특해요. 일반적으로 유럽의 모든 중요한 건축물들은 다 좌우 대칭으로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바우하우스 학교 건물은 완전히 좌우 비대칭이에요. 그거 자체가 이 사람들은 교조주의적으로 뭔가를 룰을 정해놓고 디자인을 거의 끼워 맞추는 게 아니고 기능적으로 만든 거예요. 기숙사동과 교실과 워크숍동 이런 것들이 나눠져 있는데 중간에 길이 가로질러 가거든요. 그러니까 교정실이 있는 그 동이 그 위로 이렇게 크로스로 딱 진행하게 돼 있어요. 그래서 좌우 비대칭의 배치를 가지고 있다는 게 특징이고요. 그리고 거기에 가면은 되게 인상 깊었던 거가 극장이 하나 있는데 강당이죠. 대강당 같은 거에 의자가 있는데 엄청 편안하더라고요. 엄청 편안한데 재료를 최선으로 썼어요. 파이프와 천으로만 만들어진 그런 의자예요. 그러니까 앉으면 느낌이 딱 캠핑 체어 같은 느낌이 나요. 그게 강당에 쫙 있어요. 근데 그걸 누가 설계했느냐. 그 디자이너가 말셀 브로이어입니다. 가지고 말셀 브로이어가 유명한 게 바실리 체어라고 있잖아요. 이 사람이 학생이었다고 했죠. 그리고 바슬리 칸딘스키가 선생님이었거든요. 근데 자기가 학생들의 작품을 보여줬는데 너무너무 좋아한 거예요. 바슬리 칸딘스키가. 근데 이 사람은 이거를 발표하기를 주저했어요. 그런데 바슬리 칸딘스키가 너무 야 이거 훌륭하니까 발표 꼭 해야 된다고 막 하고 결국에는 첫 번째 의자를 이 칸딘스키가 가집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이름을 따서 바슬리 체어라고 이름이 붙여진 거예요. 대단한 작품인 거죠. 우리가 인체를 보시면 뼈대가 있고 바깥쪽으로 가죽이 싸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의자에 앉으면 가죽이 의자에 닿습니다. 그래서 이 바실리 체어드 보시면 마치 인체의 뼈대처럼 구조적인 부분은 금속의 쇠파이프로 다 만들어 놓고요. 거기에 사람의 살이 닿는 부분들만 다 가죽으로 싼 거예요. 근데 그 각도와 이런 게 너무너무 편안해서 우리 그때 방송할 때 다리도 아프긴 했지만 3명이 출연진이 가서 안 일어나 한 30분 동안 계속 거기서 계속 노가리를 빚지 안 일어나고 싶은 정도로 의자가 편안해요. 그러니까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 월터그로피우스가 설계한 대사우 캠퍼스라면 이거를 가구로 제일 잘 보여주는 거가 바실리 체어죠. 폰트로 제일 잘 보여주는 거는 바우하우스라는 그 간판인 거고요. 결국에는 폼은 완전히 펑션에 의해서 딱 정해진 거고 나머지 변형은 뭐로 하는지 색깔밖에 바뀌는 게 없는 거예요. 근데 색깔도 기능을 가지죠. 색채로 유명한 분이 둘이 있거든요. 바실리 칸덴스케하고 요한스 이텐. 이 둘이 색채를 가르쳤어요. 색채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런 거에 대해서 깊이 연구했던 분들이거든요. 그러니까 형태는 기능적으로 딱 만들고 거기에 가죽의 색깔을 바꿔서 다른 의자의 기능을 가지게끔 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보면 색깔을 되게 원색에 가까운 색깔들을 많이 쓰는데 기숙사도 보시면 1층, 2층, 3층, 4층이 다른 색깔로 난간이 치여져 있고 그걸 통해서 층수의 구분을 딱 준다든지 이런 것들을 기가 막히게 해놨더라고요. 그 시절에 보면 루코브 의자도 보면 원색들을 쓰잖아요. 삼원색 같은 거. 녹색, 노란색, 빨간색 이런 것들은. 여기도 그런 걸 많이 쓰거든요. 본질적인 걸 계속 탐구를 하면 결국엔 삼원색으로 갈 수밖에 없잖아요. 중간에 있는 다양한 것들을 많이 보여주는 것보다 우리는 근본만 보여주는 것, 레스 이스모어니까 그런 원색 계열을 많이 쓰는 것 같고 이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폼팔로우 펑션 같은 스타일은 독일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네덜란드도 비슷한 운동을 하거든요 네덜란드에서는 데스틸 운동 같은 것들이 있거든요 몬드리안도 대표적이잖아요 몬드리안도 그런 원색 계열을 쓰고 선을 계속해서 단순화시키다 보면 직선밖에 안 남잖아요 90도의 수직 수평의 선만 딱 남아서 그림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 이것도 그 시절에 다 같은 사고방식을 가졌던 사람들인 것 같아요. 딱 20세기 초반의 사람들이 물자가 부족하고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야겠다는 압박감도 있고 하면서 만들어진 그런 철학이 다 공유됐던 것 같아요. 유럽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런 걸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숙사 건물에 가면 이 사람들이 인체를 얼마나 고민했는지가 느껴져요. 왜냐하면 딱 유리창이 있는데 바깥 경치가 보이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거기 책상도 놓여지게 되죠. 그럼 책상에 앉았을 때 내가 바깥에 보이는 경치가 있고 섰을 때 보이는 경치가 있잖아요. 앉았을 때와 섰을 때 두 가지의 높이가 있는데 그거에 맞춰서 유리창을 가로 프레임을 딱 선을 그어놨더라고요. 창틀이 어쨌든 유리창이 하나로 크게 못 가면 중간에 한 번 수평바가 가야 되거든요. 수평바의 높이를 어디다가 설치하느냐가 되게 중요합니다. 수평바를 제일 설계 못하는 애들은 1.5m 높이에다가 올려놓는 애들이에요. 왜냐하면 그게 사람이 섰을 때 제일 평균적으로 사람의 시선이 걸리는 데가 1.5m거든요. 거기에 수평바가 감은 바깥 풍경을 다 가리겠죠. 그러니까 그 기숙사 건물의 유리창을 보시면 섰을 때도 열리게끔 해놓고 앉았을 때도 낮게 열리게끔 등분을 딱 기가 막히게 해놨더라고요. 그렇다고 뭐 엄청난 무슨 데코레이션이 있거나 그러지도 않아요. 그래서 그걸 보면 이 사람들이 진짜 물자를 절약해서 1차 세계대전의 패전한 독일에서도 이러한 가치 있는 디자인을 만들려고 노력을 했구나. 그 닉듯입니다. 거기서 되게 인상 깊었던 것 중에 하나는 기숙사 건물에 있는 테라스였어요. 그러니까 발코니죠 발코니가 탁 튀어나와 있는데 최소한의 사이즈도 튀어나와 있거든요 진짜 그 디테일을 보면 콘크리트 슬라브를 뽑은 다음에 살짝 기울어서 앞으로 물이 배수가 되게 해야 되거든요 발코니 만들 때 제일 핵심이 발코니에 쌓여있던 먼지가 빗물이 오면 씻겨 내려오면서 더러워지거든요 건물이 그래서 이게 기울어져서 물이 앞으로만 떨어지게 해놨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쓰레바퀴마냥 옆에를 살짝 들어놨더라고요 한 2, 3mm 정도를 바닥에 가닥 끝에만 싹 들어서 물이 앞으로만 떨어지게 했는데 앞으로 딱 떨어질 때 콘크리트를 이렇게 L자 모양으로 끝에만 살짝 구부려놨어요. 그러니까 물이 그냥 떨어지고 이 물 끈기를 딱 해주면 여기서 맺혀서 그냥 뚝 떨어지게 한 거예요.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그 모양 자체가 최소한의 재료로 제일 기능적으로 디자인한 딱 그거거든요. 그래서 와 진짜 아주 디테일까지 이 사람들은 되게 신경을 많이 썼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의자하고 책상 이런 것들이 다 자기가 직접 설계를 하셨는데 저는 제일 인상 깊었던 거가 거기에 서류 넣는 함이었어요. 책상에도 어쨌든 구조가 필요하잖아요. 구조 프레임을 이렇게 짜서 올라가서 이렇게 뺑뺑이 돌아요. 그 딱 라인이 연결되게 된 게 바우하우스 위에서 바라본 캠퍼스 배치도랑 비슷한 느낌이 들거든요. 바람기 모양으로 뺑뺑 도는 느낌. 그런데 거기에 제일 특징적인 거가 책상이 이렇게 있으면 우리가 서류함 같은 거가 하나 놓여지게 되면 자리를 차지하잖아요. 이 사람은 포스트를 기둥을 세워서 거기에 쇠 막대기가 내려와서 유리로 되어 있는 선반이 딱 걸려 있어요. 위에서 이렇게 붙잡고 있는 구조를 띄죠. 그 얘기는 밑에 스페이스를 책상을 다 쓸 수 있다는 얘기인 거예요 선반도 유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앞에 있는 경치를 가리지 않아요 서류가 아무것도 없으면 투명하게 보이고 서류를 놓으면 서류만 보이겠죠 만약에 그 사람이 서류 놓는 선반을 따로 설계하고 책상을 따로 디자인했다면 책상 위에다가 서류 놓는 함을 놓잖아요 그러면 책상을 더 크게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재료를 더 많이 쓰겠죠. 그러니까 재료를 최적으로 쓰고 공간도 최소한으로 사용하면서도 기능을 다 만족시키는 디자인을 한 게 그게 저는 되게 인상 깊었어요. 제가 설계한 소파를 보시면 밑에 다리를 되게 가늘게 만들어서 붕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잖아요. 밑에까지 가구가 내려오면 면적을 차지하면서 공간이 좁아 보이는데 그걸 띄움으로 인해서 시야가 밑에 열리고 뒤쪽 창문에서 햇빛이 들어오게 되면 바닥이 밝아지잖아요. 그렇게 되면 결국에는 마루가 훨씬 더 넓어 보이는 효과가 생기는 거죠. 그런 식으로 사고를 한다는 것 자체가 저 역시도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은 사고 방식으로 할 수 있겠죠. 옛날 사람들 이스트 시절에 의자 만들 때 그런 기능보다는 보시면 의자 다리미에다가 호랑이 발톱 같은 거 그려놓고 그러거든요. 조각해놓고 상징성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요. 그러다가 그리스 오면서 그런 동물의 상징들은 다 의사 디자인에서 빠지잖아요. 기능적으로 바뀌게 되고.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디자인할 때 그런 상징적인 거를 막 의미를 부여해서 집어넣는다? 물론 지금도 프랭크게리 같은 사람은 그런 일을 하죠. 근데 그렇게 학창시절에 설계하면 교수님들이 다 뭐라고 그러지? 근데 그 이유는 다 바우스의 계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폼 팔로우 펑션. 합리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설명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폼 팔로우 펑션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이건데 그게 바우하우스의 스피릿이라고 했잖아요. 미스 반들루에가 한 얘기가 또 유명한 게 less is more죠. 모든 걸 빼낼수록 본질에 가까워지어서 그게 더 사실 more다. 정말 멋있는 말인 것 같아요. 되게 반어법적이잖아요. less가 어떻게 more해.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이런 뜻이잖아요, 거의. less is more라는 그 말이 함축적으로 그 철학을 진짜 딱 잘 보여주는 스테이먼트인 것 같아요. 그게 폰팔럼 펑션하고 같은 계열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물론 현대에 와서 그 반대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 헤더윅 같은 건축가인 거죠. 레스 이스보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죠. 비아케 같은 건축가들이란지 이런 사람들은 건축의 인면이 너무 레스 이스모하니까 지루하고 삭막하다. 그러니까 그런 데다가 감성적인 것들을 더 집어넣어야 된다. 그런 얘기를 많이 하죠. 그게 딱 이번에 우리 서울 건축 비엔날레의 주제이기도 하죠. 헤더윅이 만든 주제가. 그게 시대가 달라서 그런 것 같아요. 우리 한번 봅시다. 1920년대 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시절 그때는 물자가 부족하고 도시로 인구가 밀려들고 근데 대량 생산을 할 수 있을 만한 아직 기술력은 되어 있지 않고 그러면은 레스 이스모어가 맞죠 근데 21세기 100년 지난 2020년대 지금은 정말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기거든요 세계화가 되면서 값싼 노동력인 개발도상국으로 모든 생산이 넘겨졌죠 그래서 중국과 베트남 이런 데서 엄청나게 생산을 하잖아요 물자가 이렇게 풍요롭게 넘쳐나는 시절이 없었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레스 이스모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장식이 있어야 되고 감성적이어야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죠. 그만큼 지금이 잘 사는 시절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이게 세계화가 끝나고 자유무역이 싹대고 공급 체인이 좀 망가지게 되면은 사실은 Let's It's More가 더 나올 수도 있겠죠. 지금은 두 가지가 다 병행하는 시기죠. 엄청난 장식을 만들려는 건축가도 있고 아직까지도 안도다다오 같은 사람들은 Let's It's More 같은 정신을 이어가는 사람이니까. 제가 미니멀리즘 말씀할 때도 했지만 그게 계속해서 호평받는 가장 큰 이유는 정보가 너무 넘쳐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해요. 과도한 정보에 우리는 노출되어 살기 때문에 너무 피곤해서 오히려 어떠한 공간에서는 정보를 비워낸 공간 자체가 약간 명상을 하는 것 같은 미니멀한 공간을 우리의 뇌가 더 선호할 수도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제일 중요한 건 개인적인 성향 차이겠죠. 저는 약간 후자에 속하는 것 같아요. 너무 정신 없는 게 좀 싫고 좀 혼자 생각할 수 있고 왜냐하면 너무나 정보가 많으면 그 정보가 나의 생각을 조종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한참 동안 음악을 안 듣습니다. 왜냐하면 그날 아침에 일어나서 음악을 딱 트는 순간 하루의 감정이 그 작곡가가 나를 완전히 조종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한참 동안은 음악을 안 들어요. 그래서 그냥 혼자 조용히 생각하면서 샤워하고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그게 개인적인 차이인 것 같아요. 네, 저 처음 가봤어요. 왜냐하면 이 바우하우스가 있는 데사우가 동독이에요. 통일이 된 다음에만 거리가 오픈이 됐고 서독하고 동독 지역을 보시면 동독 지역이 개발이 잘 안 돼 있거든요. 그래서 갈 일이 사실 별로 없어요. 지금도 갔더니 거의 멈춰진 세상 같아요. 너무 한적하고 그냥 조용한 시골이더라고요. 근데 바우하우스 건물만은 복원을 되게 잘해놔서 거의 새 것처럼 보여요. 그냥 관광지로 쓰이더라고요. 1층에 카페나 이런 것들은 일반 시민들이 들어가서 옛날에 식당으로 쓰던 곳들은 그냥 쓸 수 있게 돼 있고요. 기숙사는 호텔로 쓸 수 있어요. 내가 신청하면 거기서 잘 수 있게 되어 있어요. 나머지 워크숍 공간이나 거기는 전시실로 쓰더라고요. 그래서 미술 작품 같은 게 전시가 돼 있고 근데 참 저는 그게 인상 깊었어요. 이게 학교잖아요.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런 비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게 기업을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정부 조직을 만들 수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사람들은 학교를 만들었다는 게 되게 독특한 것 같아요. 어떤 새로운 정신을 갖고 학교를 만든 거가 실제로 워킹하기도 했던 것 같고요. 되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는 그런 계기가 됐던 것 같고 그래서 저는 거의 가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혁신적인 새로운 시대를 꿈꾸면서 새로운 학교를 만들었던 사람들 진짜 앞서 나간 비저널이잖아요, 이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 21세기에 와서는 어떤 일을 할까? 인공지능이 이렇게 발달하고 엄청나게 세상이 격변하고 있는 2025년도에 왔으면 이 사람들이 지금 와서도 학교를 만들었을까? 아니면 실리콘밸리에 가서 회사를 세웠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어떠한 일을 했을 거면 어떠한 미래를 꿈꿨을까가 되게 궁금했어요. 네, 그러면 이번 시간에 바우아웃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